여행이란 결국 하루의 흐름을 얼마나 행복하게 보내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동해는 아침, 점심, 저녁이 모두 특별한 감정으로 흘러가는 곳이다.
푸른 바다, 잔잔한 파도, 그리고 향긋한 해산물 냄새는
단순한 풍경을 넘어 입맛과 마음까지 채워주는 공간이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누군가는 아이 손을 꼭 잡고,
누군가는 홀로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동해의 하루를 음식으로 완성하는 코스를 준비했다.
이 하루를 따라가면,
여행은 단순한 떠남이 아니라
맛으로 기억되는 감정의 기록이 된다.
아침 – 속을 달래고 마음을 깨우는 따뜻한 국물 한 끼
동해의 아침은 해돋이와 함께 시작된다.
여명이 밝아올 무렵,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은 마치 세상의 시작처럼 느껴진다.
그 황홀한 풍경을 가슴에 담고 난 뒤,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이다.
속초 중앙시장에는 새벽부터 불을 밝히는 식당이 많다.
그 중에서도 ‘할머니 생선국밥집’으로 알려진 소박한 식당은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의 아침을 책임진다.
명태를 넣고 푹 끓여낸 국물은 얼큰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하다.
국물 속에는 무, 콩나물, 대파가 어우러져 깊고 진한 맛을 낸다.
한입 먹는 순간, 어제까지의 피곤함이 씻기고 오늘 하루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만약 조금 더 부드럽고 담백한 아침을 원한다면,
강릉 초당순두부마을로 향해보자.
이곳의 순두부는 천연 바닷물 간수로 만든다.
하얀 두부는 고소하고 부드러우며, 들깨가루와 간장을 살짝 얹어 먹으면 그 맛이 배가된다.
계란을 살짝 풀어낸 순두부찌개는 속을 따뜻하게 데우고, 마음까지 부드럽게 감싸준다.
또 다른 추천은 묵호항의 전복죽 전문점이다.
전날 무리한 운전이나 야경 투어로 지친 여행자라면 전복죽이 최고의 해장식이다.
쫄깃한 전복살, 고소한 참기름 향, 그리고 씹을수록 고소한 밥알까지.
입 안 가득 차오르는 부드러움에 피곤함은 사라지고,
다시 걷고 싶어지는 에너지가 몸속에서 샘솟는다.
아이와 함께라면,
조금 더 간단한 메뉴로 전복죽 미니세트 + 우유 + 김치 몇 점이면 훌륭한 아침 식사가 된다.
아침의 따뜻한 국물은 단지 속을 달래는 역할을 넘어
여행의 첫 문장을 열어주는 따뜻한 인사 같은 존재다.
이 하루가 분명 특별할 거라는 예감이 들게 만든다.
점심 – 바다의 싱그러움을 그대로 담은 회덮밥과 물회
점심시간이 되면, 해는 제법 높이 떠 있고 바람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
동해의 낮은 늘 ‘싱그러움’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바다의 싱그러움을 고스란히 담아낸 음식이 제격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회덮밥이다.
속초 대포항 근처에는 회덮밥 전문점이 밀집해 있다.
그 중에서도 ‘바다정식집’이라는 곳은 광어, 우럭, 연어, 도미 등 4~5종의 생선회를 얇게 썰어
밥 위에 차곡차곡 올려준다.
그 위로 올려진 오이채, 무순, 당근, 참기름, 깨소금.
그리고 마지막으로 붉은 초고추장을 살짝 얹는다.
젓가락으로 천천히 비비면,
밥알 사이에 회가 촉촉하게 스며들고,
그 사이사이 야채가 톡톡 씹힌다.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바다를 입안에 담는 느낌이다.
함께 나오는 미역국과 해물파전도 감칠맛을 더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가게 특유의 매운탕이 제공된다.
회로 쓴 생선 뼈를 우려낸 국물은 얼큰하고 깊다.
남김없이 마시고 나면,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 든다.
무더운 날에는 물회를 추천한다.
특히 강릉 안목항 근처의 ‘냉수물회집’은 유명하다.
살얼음이 둥둥 떠 있는 육수에 회, 배, 오이, 미역, 채 썬 양배추까지 푸짐하게 들어간다.
한입 베어무는 순간, 입 안에 한여름 바다가 쏟아지는 듯한 시원함이 몰려온다.
매운맛을 즐기는 여행자라면
청양고추를 더한 육수와 겨자를 살짝 푼 물회도 별미다.
물회에는 소면사리를 추가해 비벼 먹으면 한 그릇으로 두 가지 맛을 즐길 수 있다.
점심시간의 회덮밥과 물회는
이동으로 지친 몸에 생기를 불어넣고,
‘아, 잘 왔구나’ 싶은 확신을 주는 고마운 한 끼다.
그리고 그 맛은 오래도록 입 안에 남아
여행을 기억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저녁 – 불빛과 파도가 어우러진 조개구이의 향연
노을이 바다를 물들이는 시간.
동해의 해변은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시간에 가장 어울리는 음식은 불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조개구이다.
속초 해수욕장 근처, 묵호항, 삼척 정라항 등
해변가에 조개구이 거리들이 형성돼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숯불이 놓인 테이블,
그 위에 놓인 조개 한 바구니가 당신을 반긴다.
가리비, 키조개, 백합, 참소라, 홍합…
조개는 크고, 싱그럽고, 신선하다.
하나씩 불에 올려 굽다 보면,
껍질이 스르르 벌어지고, 안에서 국물이 끓기 시작한다.
그 국물은 숟가락으로 떠 마셔야 제맛이다.
짭조름하면서도 깊은 바다 맛이 혀끝을 감싼다.
조개구이에는 다양한 조합이 함께한다.
치즈를 얹은 가리비, 마늘 버터로 향을 더한 백합,
고추 양념을 얹은 매운 조개찜.
그리고 해물라면, 해물파전, 볶음밥은 마무리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볶음밥은 조개국물이 스며든 철판에
김가루, 계란, 참기름, 밥을 넣고 비벼 만든다.
불 앞에서 조용히 볶아지는 그 소리,
코끝에 닿는 그 향기는 하루의 피날레를 완성시킨다.
연인과 함께라면 조용한 바닷가 자리에 앉아
눈빛을 나누며 천천히 구워 먹는 시간을 가져보자.
가족과 함께라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맛있는 이야기들을 곁들이며
즐거운 저녁시간을 나눌 수 있다.
이렇게 동해의 저녁은 맛과 풍경, 그리고 사람의 온기가 어우러진다.
밤바다의 파도 소리는 조용하고,
불빛은 부드럽게 흔들린다.
조개의 향은 그 속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른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가 저문다.
결론 – 하루를 맛으로 기억하게 되는 동해 여행
동해는 우리에게 많은 걸 준다.
파도 소리, 해돋이, 해변 산책, 그리고 맛있는 음식까지.
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건
그 모든 순간을 같이 나눈 사람과의 기억이다.
한 끼의 국물에서 위로를 받고,
점심의 회 한 점에 감탄하고,
저녁의 조개 앞에서 웃고,
그 순간순간이 모여 여행의 온기가 된다.
그 온기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사진보다 오래 남고, 기념품보다 선명하다.
그래서 동해에서의 하루는 음식으로 완성되는 하루다.
이 글을 읽고 떠나는 당신의 여행에도
따뜻한 국물, 싱그러운 회, 지글지글 조개,
그리고 함께 웃는 얼굴이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그 하루를 떠올릴 때
맛있고 따뜻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